한 청년의 할머니 이야기

어제 어느 종합편성채널의 한 오락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사연을 보면서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

경험상 방송에서 드러내는 사연이란 것이, 아마 사실을 상당히 과장할 것이고, 그 이면에는 특정한 감동을 이끌어 내려는 의도가 깔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것은 낯설지 않은 이웃의 사연이었다.

그 누구를 거기에 투영시켜 보아도 그럴 듯할 것 같다.

선이니 악이니 단정짓기도 하는 한 사람과의 인연이나, 행복이었니 불행이었니 감정을 담아 기억하는 어느 순간의 추억이 어떤  부류의 사람에게만 특별히 편향되게 주어지는 삶의 현실이었겠는가?

부모의 이혼으로 두 살 때 헤어진 엄마이 얼굴을 떠오르진 않지만  노란 보따리와 함께 할머니에게 버려지던 순간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는 청년의 트라우마를 헤아릴 수 있을까?

정신 파탄 정도의 심리상태이니 생계를 기댈 수 없는 아버지인데다가 그후 할머니마저 교통사고를 당해 거동이 불편하게 되어 9살부터 할머니를 먹여 살려야 했다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세상에서 얼마나 할머니가 보고 싶을까?

찰진 경상도 사투리로 전하는 할머니에 대한 마지막 부탁의 말이 가슴을 적신다.

 “할매야! 없는 집에 시집와 손주 키우느라 참말로 고생 많았데이. 내는 이제 고등학교도 졸업했고 우짜됫둥  살지 않겠나? 이제 아무 걱정말고 아프지도 말고 잘 지내라이. 냉중에 만나자이…..”

예사롭지 않게 힘든 삶을 살면서도 부모에 대한 원망이나 그 쌓인 증오를  타인과 세상에 쏟아내지 않고, 유일하게 의지할 가족인 할머니와 함께하는 삶을 지키기 위해 극단의 고통을 참고 이겨낸 청년의 마음이 천사같이 곱게 보인다.

트로트 가수가 꿈이었다는 그가 어찌어찌 그 길로 향한 발걸음을 내 딛은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 힘든 삶의 질곡을 벗어난 사연을 듣고 보니 청년이 잘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더욱 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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